“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입력 2016-07-21 14:51:47 | 수정 7일전

   

정부 손길 안 닿는

보호 사각지대 지킴이

여성활동가들이 말하는 ‘나의 일’

▲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한 여성공익단체 역량강화지원사업 ‘짧은 여행, 긴 호흡’에 참여한 여성활동가들.

자신을 무시하는 학교밖 청소년도 “예쁘다”며 돌봐주는 청소년쉼터 활동가, 이주여성의 손과 발이 되어 보살피는 이주여성 보호센터 활동가, 가해자 남편의 협박을 함께 견디는 가정폭력 상담소 활동가…. 여성활동가들의 하루하루는 놀랍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한 여성활동가에게 물었다. “당신은 착한 사람입니까?”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착한 일 한다’ ‘좋은 일 한다’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착한 사람이 아니다. 때로는 내 생계를 위해 일한다. 단지 이 일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활동가들은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보호 사각지대에서 누군가의 자립지원을 위해 애쓰는 존재다. 그러나 민간단체는 물론 정부에서도 활동가 현황 통계나 지원 체계 등 실태조사는 전무한 실정이다. 정확한 정보와 통계가 없는 만큼 활동가들의 의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 활동가는 활동비 지급과 연수, 교육 훈련 등의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의 지역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적 인정과 지원체계가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지원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스트레스와 심리적 압박감을 받으면서도 현장을 지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인옥 청소년도서관 작공 교사

“재작년까지 서울시에서 임대료 지원을 받았는데 서울시가 (지원을) 철수하면서 작년부터 자립했다. 주민들의 후원으로 보증금을 마련해 월세를 내기 시작했다. 활동가들은 월급을 받으면 다시 내놓고 엔 분의 일로 나눠 가진다. 3명의 교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을 돌본다. 학교밖 아이들 10명, 일반 위기나 부적응 청소년이 20~30명쯤 된다.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는 아이들이 온다. 밥도 먹이고, 학습, 상담, 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아이들이 사고를 치면 경찰서에도 간다. 아이들이 정말 예쁘고, 일은 너무 재밌다. 다만 일하면서 후원자를 모집하는 게 너무 힘들다.”

김솔내 충남가족과성상담소 총무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일하지는 않는다. 다만 최근 몇 년간 다른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주는 게 숙명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도움이라기보다는 영향을 주고 있다. 힘든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는 게 사실이다. 또 처우 문제로 이직률이 높은 분야다. 요즘엔 활동가 처우에 대해 어느 정도 보장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구에서 조금씩 의견을 수렴해서 중앙에서 법제화 될 수 있게 해보자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전영희 모이세이주여성의집 상담원

“봉사와 헌신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급여 등 처우개선에 있어 내 목소리를 내놓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내가 행복해야 서비스를 줄 수 있다. 나는 먹고살기 힘든데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겠나. 활동가들은 보조금을 못 받는데도 활동한다. 대단한 거다. 정부에서는 지원을 못 해준다고 하는데 예산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다. 각각의 협의회들이 힘을 모으고 있다. 점점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주찬희 통영YWCA성폭력상담소 팀장

“피해자 지원을 요청할 때 관계기관과 부딪히면 좌절감이 생기기도 한다. 마치 갑을관계처럼 수직적인 느낌이다. 요새는 경찰서에서도 성폭력 특별전담반이 많이 조직되고 있다. 그러나 급하게 조직되다 보니 제대로 지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렇게 피해자 지원이 꼬여가는 것을 보거나 피해자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서 돌고 돌아서 상담소에 오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지원 기관에 있으면서 제대로 지원하지 못할 때 ‘내가 능력이 부족한 건 아닌가’ 자책감이 든다.”

김문희 (사)속초여성인권센터 부설 속초성폭력상담소 교육부장

“피해자를 위한 상담지원, 의료지원, 법률지원까지 다 함께 하고 있다. 이런 내부 업무뿐 아니라 기금사업까지 관여하고 있어서 과중한 업무로 지칠 때가 많다. 폭력, 성폭력에 대한 사회문제 고민과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부족하다. 처음 활동을 시작할 때처럼 일에 대한 열정과 설렘, 비전을 다시금 새겨보고, 지친 몸과 마음을 쉼과 여유를 가질 기회가 절실하다.”

엄주현 (사)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사무처장

“북한 어린이들은 비교적 단순한 질병에도 제대로 된 약이 없어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호흡기 질환이나 설사약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예전에는 북한 소식을 민간단체가 직접 가서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안 된다. 2013년에 갔었고, 올해나 내년에 다시 한 번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남북통일이 되는 게 우리 민족이 잘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교류와 협력 통해서 이뤄내야 한다.”

김순난 대전열린가정폭력상담소 부소장

“관공서에서 지원해준다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결과가 없을 때가 있다. 또 눈에 보이는 성과나 지표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자료만 챙겨달라고 하고….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서류가 조금 미비하면 ‘그동안 뭐했나’라고 한다. 서운하고 황당하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상담실장

“상담의 특성상 재상담을 많이 해야 하고, 긴 시간 동안 상담을 진행하는 어려움이 있다. 나름 잘 견디고 있다고, 스스로 정신력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에는 체력이 고갈되고, 에너지가 많이 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계속하는 이유는 이게 꼭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원동력이 된다.”

<이 기사는 한국여성재단이 주최하고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와 교보생명이 후원한 여성활동가 비전여행 ‘짧은 여행, 긴 호흡’ 참가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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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호 [사회] (2016-07-21)
홍미은 기자 (hme1503@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