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어쩌다 당하는지도 모르면서 여성대책만 난무

성별 분리 없는 사정당국 범죄 분석, 피해자 실태 소홀한 여가부 조사 
전문가들 "가정폭력 여성 사망자 수도 모르는 통계부터 바로 잡아야"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2016-06-25 07:00:00 송고



©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강남역 살인사건, 여교사 성폭행 사건 등 잇따르는 여성 대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여성 피해자들이 주로 어디에서, 어떤 이유로, 누구로부터 범행을 당하는지 제대로된 실태 조사나 통계 없이 대책만 난무해 우선 믿을만한 통계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다.

25일 여성범죄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여성 대상 범죄 실태를 알 수 있는 통계는 대검찰청 범죄분석과 경찰청에서 공개하는 범죄통계, 여성가족부의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실태조사가 있다. 하지만 이들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범죄 특성은 제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 해에 가정폭력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몇 명인지도 모르는 것이 지금 범죄 통계의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 남녀 구분없는 범죄 분석…가정폭력 사망자 집계도 없어 

대검찰청의 2015년 범죄분석을 보면 강도, 살인, 방화 등 범죄 종류별로 피해자 성별과 연령이 구분돼 있어 어떤 연령대의 어떤 성별이 범죄에 취약한지는 확인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발생한 강력범죄 중 살인의 경우 남성은 40대가 147건으로 가장 많고 여성은 20대가 174건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이 통계로는 여성들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알 수 없다. 피해자 특성을 남녀 구분 없이 범죄 종류로만 분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인은 주로 '이야기 중'(273건) 발생하고 가해자와의 관계는 타인(229건)과 동거친족(187건)인 경우가 많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여성 대상 살인 범죄의 특성은 알 수가 없다.

이는 경찰청이 공개하는 범죄통계도 마찬가지다. 범죄 발생 시간, 장소, 범행 수법과 도구에 대한 분석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범죄 종류로만 분석한다. 그래서 폭행이 될 수도 있고 살인이 될 수도 있는 가정폭력이나 데이트폭력 같은 통계는 미흡하다.

가정폭력의 경우 경찰청이 전국에서 발생하는 가정폭력 범죄 발생 건수와 검거 건수를 집계하고 있다. 폭행, 상해, 주거침입, 감금, 강간 사건 등에서 가족구성원에 의한 폭력사건만 따로 집계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중 몇 명이 사망했는지,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등 더 구체적인 통계는 없다. 경찰청 관계자는 "1년에 가정폭력으로 몇 명이 사망했는지까지는 집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조사는 국가미승인통계, 공표도 못해 

여성 대상 범죄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여가부에서 실시하는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실태조사다. 여가부는 3년마다 수천 가구를 대상으로 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폭력을 경험했는지 조사·분석해 발표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가부의 실태조사에도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범죄 예방과 대안 정책 마련을 위해서는 피해자 조사가 중요한데 여가부 실태조사는 일반인 조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여가부의 가정폭력과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일반 가구가 조사대상인 본조사는 국가승인통계이지만 피해자 등 특정 집단이 조사대상인 부가조사는 국가미승인통계다. 부가조사가 통계청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은 표본이 적어 신뢰성과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송 사무처장은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비율이나 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조사보다 실제 가정폭력을 겪은 피해자 조사가 범죄 예방 대책을 세우는 데 더 도움된다"며 "그런데 국가미승인통계는 공표할 수 없어 여가부는 지난 2013년 가정폭력 실태조사를 하고도 피해자조사 결과는 발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통계청이 조사의 신뢰도와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가정폭력과 성폭력 실태조사 표본 수를 늘리라고 권고하면서 올해 예정된 부가조사는 더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 관계자는 "2013년 5000가구였던 가정폭력 실태조사 표본을 올해 6000가구로 늘려 잡으면서 부가조사는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실태조사는 더 심각하다.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따라 여가부는 3년마다 성매매 실태조사를 하고 공표해야 하지만 본조사조차 국가승인을 받지 못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성매매 실태조사는 집창촌과 신종 성매매업소가 조사대상인데 이것 자체가 불법인 데다 음성적인 곳이 많아 표본에 신뢰성이 낮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성매매 실태조사 결과는 일부만 공개되고 있다.

◇통계 관리 일원화, 성별에 따른 범죄 분석 필요

전문가들은 여성 대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실태조사와 통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박사는 "관련 통계를 생산 ,집계, 관리, 발표하는 업무를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런 식으로는 10년이 지나도 여성 대상 폭력이 증가했는지 줄었는지 말할 지표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계획한 살인이 아니면 배우자나 강도에게 죽을 때까지 맞아도 치사사건으로 분류돼 살인 통계에는 포함되지도 않는다"며 "사망 사건만이라도 치사까지 포함해 통계를 잡아야 여성들이 왜 죽는지, 왜 불안해하는지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송 사무처장도 "진단이 틀리면 대책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며 "범죄가 왜 일어나고 얼마나 발생하는지 제대로 된 종합대책을 세울 기초자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은하 기자(letit25@)



출처 : 뉴스1 http://news1.kr/articles/?2701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