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왜 협박 받으면서도 그 남자 곁에 머물렀나”


등록 : 2015.02.24 15:46수정 : 2015.02.24 15:57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가 2012년 ‘왜 가정폭력 피해자는 떠나지 않을까?’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는 모습. 유튜브 화면 갈무리

가정폭력 피해 여성 강연 영상 큰 반향 불러
“권총 협박 받으면서도 학대로 이해하지 못한 나”
“가해자가 심어준 판타지 버리고 침묵 깨야 극복”

‘가정 폭력’ 피해 여성이 ‘왜 피해자는 자신을 폭행하는 가해자 곁을 떠나지 않을까’라는 질문의 답이 될 만한 경험을 털어놓은 테드(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을 한데 모아 강연회와 컨퍼런스를 여는 미국의 비영리재단) 강연 영상(▶관련 링크)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4일 오늘의 유머와 뽐뿌 등 커뮤니티에는 미국인 여성 레슬리 모건 스타이너가 2012년 시애틀에서 한 ‘왜 가정폭력 피해자는 떠나지 않을까?(Why Don’t Domestic Violence Victims Leave?)‘라는 제목의 테드 강연 영상 캡처 글이 게시되며 SNS 등으로 빠르게 공유됐다.

스타이너는 강연에서 “22살 때 뉴욕에서 <세븐틴>이라는 잡지의 작가이자 편집자로 일하던 시절 ‘정신적 동반자’라고 생각했던 남자에 의해 여러 차례 탄환이 장착된 총을 머리에 겨누는 폭력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제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사랑했던 남자가 제 머리에 총을 겨누며 저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그것도 제가 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자주”라며 “비정상적인 사랑 이야기이자 ‘사랑으로 위장한 심리적 올가미’”라고 말했다.

스타이너는 이어 “이 이야기는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며 “저는 전형적인 가정폭력 생존자로는 보이지 않는, 하버드 학사와 와튼 경영대학원 석사 학위를 가지고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들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말했다. 가정폭력이 인종과 종교, 수입과 교육 수준을 떠나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꺼낸 말이다. 그는 아울러 “가정폭력은 여성들에게 일어나는 것이고 여성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며 “남자가 학대자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친밀하고 상호 의존적이며 장기간의 관계, 즉 가족 안에서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스타이너의 강연을 보면, 미국에서는 16~24살 여성들이 다른 나이대 여성에 견줘 3배나 더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 또 16~24살 여성 500명 이상이 매년 폭력적인 동반자와 남자 친구,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다.

스타이너는 강연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인 자신의 전 남편 코너가 피해자인 자신에게 각인시킨 두 가지 판타지에 대해 설명했다. 하나는 ‘가해자인 코너가 피해자인 스타이너를 이상화해서 스타이너가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너가 스타이너를 작가로서, 또 여자로서 아무도 해주지 않았던 방식으로 믿어주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면서 둘 사이에 마법 같은 신뢰를 형성한 것’이었다. 코너의 비밀이란, 4살 때부터 자신의 양아버지로부터 야만적이고 반복적으로 육체적 구타를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스타이너는 강연에서 “가정폭력의 첫 번째 단계는 피해자를 유혹하고 매료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는 피해자를 격리시키는 것임을 몰랐다”고 말했다. 코너는 스타이너를 설득해 도시를 벗어나 작은 마을로 이사했고, ‘폭력으로 협박해서 그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가정 폭력의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리고 코너는 “어릴 때 겪은 충격적인 경험 때문에 보호받는 기분을 느낀다”는 이유로 권총 3자루를 구입했고, 결혼 5일 전부터 폭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폭력은 결혼 생활 2년 반 내내 이어졌다.

스타이너는 “저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 답은 간단하다”며 “저는 그가 저를 학대하고 있는지 몰랐다. 오히려 저는 매우 강인한 여성으로서 문제 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졌을 뿐이며 이 세상에 오직 저만이 코너가 그 안의 악마들을 물리치도록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한 이유는 여러분은 모르고 피해자들만 알고 있는 것”이라며 “가해자를 떠나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다. 왜냐하면 가정폭력의 마지막 단계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스타이너는 마지막으로 “제가 저의 비정상적인 사랑 이야기를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침묵을 깼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저는 오늘도 이 침묵을 깨고 있고, 이것이 제가 다른 피해자들을 돕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스타이너는 이어 “학대는 오직 침묵 속에서만 자라난다”며 “여러분도 가정 폭력을 끝낼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힘은 바로 그곳에 불빛을 비추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