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화장실’과 ‘정신질환자’에 있지 않다

제공일 : 2016.05.24 ㅣ 제공자 : 한국여성의전화

문의 : 한국여성의전화 인권정책국 ㅣ 전화:  02-3156-5453 ㅣ 팩스 : 02-3156-5499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여성이 살해된 지 엿새째인 23일 어제, 정부와 경찰이 앞 다투어 대책을 내놓았다. 먼저 경찰이 발표한 ‘여성 상대 범죄에 대한 방지 대책’의 골자는 이렇다. 6월부터 8월까지 세 달간 여성 상대 범죄대응 특별 치안활동을 벌여 범죄 취약 지역 등에 대한 순찰활동 강화와 범인 검거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장기적으로는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 진단 및 행정입원을 요청하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행정자치부는 전국 남녀 공용 화장실 실태를 조사하고, 남녀 공용 화장실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민간 화장실을 개방 화장실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개방 화장실로 바꾸면 정부나 지자체의 관리 대상이 되어 남녀화장실 분리가 가능한 이유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에서는 공중화장실 실태에 대한 전수조사에 들어간 상황이다.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이 ‘정신질환자’에 의해 살해된 범죄.” 경찰과 정부의 초점은 지극히 표면적이고도 명확했다. 공용 화장실에서 사건이 벌어졌으니 남녀가 분리된 화장실을 만들고, 가해자가 정신질환을 앓던 이었다고 하니 앞으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경계와 배척을 강화하면 되었다. 참 쉽다.

그러면 앞으로 과연 여성들은 남녀 분리된 화장실에서 안전해질까? 가해자에게 화장실의 남녀 분리 여부가 큰 차이가 있을까? 가해자는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움직이고, 어디서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화장실’이 아니다. 여성들에게는 그 곳이 어디든, 여성에 대한 차별, 배제, 혐오, 폭력이 곳곳에 자리한 일상이 곧 두려움이다.

정신질환자의 범죄 위험도를 진단해 그들을 ‘격리’하기만 하면, 여성들은 안전해질까? 여성들에게는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에게서 지속적인 위협과 폭력을 경험하는 일상이 곧 두려움이다. 무엇보다, 정신질환을 앓으며 우리 사회에서 또 다른 사회적 소수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은 또 다른 폭력이다.

경찰과 정부는 정말 이렇게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지 자문해보라. 이번 사건에 대한 추모의 글 그 어디에서도, 그 어떤 시민도 이런 대책을 요구한 바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문제의 본질은 우리 사회의 성평등과 인권 현실에 있다.

2016.5.24


한국여성의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