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학대, 혹시 나도?] 무심코 한 당신의 행동에 아이는 아프다


지속적으로 무서운 그림 보여주고, 놀려도 정서학대

베이비뉴스, 기사작성일 : 2016-12-07 15:11:19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최근 검찰은 아동을 숨지게 한 아동학대범에 대해 최고 사형을 구형할 수 있는 보다 엄격한 범죄 처벌 기준을 내놨다. 아동학대에 관한 사회의식, 엄벌 요구가 고조된 데 따른 조치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아직까지 폭력 및 성폭력, 방임 등 물리적·신체적 학대에 대한 처벌에 편중돼 있다. 정서적 학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처벌 기준이 미흡할뿐더러, 있다 해도 매우 추상적이고 애매한 실정. 정서 및 심리학대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그리 높지 않은 결과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차마 의식하지 못한 채 남용되는 정서학대가 만연하게 퍼져있다. 정서학대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 인식의 부재 등 정서학대를 심각한 학대의 유형으로 인지 못 하는 부모가 적지 않은 것.

부모들이 이를 자각하지 못하는 현실과 정서학대의 유형, 그에 따라 아이에게 나타날 수 있는 징후를 짚어보고, 정서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국가, 단체, 부모가 해야 할 일들을 살펴본다.

<기사 싣는 순서>

① 당신도 '학대부모'일 수 있습니다
② 무심코 하는 당신의 행동에 아이는 아프다
③ [카드뉴스] 옆집 아이와 우리 아이, 비교해본 적 없나요?
④ 정서학대, 아이의 몸과 마음을 곪깁니다
⑤ 정서학대 처벌? "촘촘한 법과 제도 필요"

"아동의 정신건강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면 정서학대입니다."

지난 1월 춘천지법은 세 살 아이에게 도깨비 앱을 보여준 유치원 교사를 벌금형에 처했다. 도깨비 앱은 도깨비나 처녀 귀신이 화면에 등장해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영상이다.

춘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A 씨는 낮잠 시간인데도 자지 않는 B 군을 재우기 위해 이 앱을 강제로 보게 했다. 이 일을 겪은 B 군은 경기를 일으키고 악몽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불안 증세로 심리치료까지 받았다.

A 씨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사건을 담당했던 박정길 춘천지법 형사 1단독 부장판사는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가 되기에 충분하다. 죄책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례와 같이 신체적·물리적 학대뿐만 아니라 아동의 정신건강 발달에 해를 끼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정서학대로 아동학대의 범주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신체적 질병부터 우울증, 정서불안, 히스테리, 강박증 등 정서학대가 파생하는 문제점을 우려하며 "정서학대가 신체학대만큼이나 심각한 학대의 유형"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이지 않아 더 무서운 정서학대, 과연 어떤 말과 행동이 해당될까? 아동권리보호NGO, 굿네이버스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정서학대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와 판례를 소개한다.
 

신체적·물리적 학대뿐만 아니라 아동의 정신건강 발달에 해를 끼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정서학대로 아동학대의 범주에 속한다. ⓒ베이비뉴스


◇ 언어폭력

정서학대는 '아동복지법 제3조 제7호'에 따라 보호자를 포함한 성인이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정신적 폭력, 가혹행위를 일컫는다.

아동에게 행하는 언어적 모욕, 정서적 위협, 감금이나 억제, 기타 가학적인 행위를 말하며 언어적, 정신적, 심리적 학대라고도 한다.

먼저 원망적·거부적·적대적 또는 경멸적인 언어폭력 등이 정서학대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너만 없었어도 내가 이런 꼴로 살지는 않았을 거야",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 "우리 집에서 너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며 아동에게 자주 폭언을 하는 경우다.

또 "말을 듣지 않으면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아동을 위협하거나, "넌 왜 형만큼 못해?" 등 형보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비교·편애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거부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놀리는 행위도 정서학대 중 하나.

실제로 지난 3월 부산지법은 언어치료를 받고 있는 A군(5, 부산)에게 "피노키오"라며 놀린 유치원 교사를 아동학대 죄로 인정, 300만 원 벌금형에 처한 바 있다. 당시 교사는 자신이 부담임인 반의 원생인 A군에게 '거짓말쟁이'라는 의미로 "피노키오", "코가 길어졌네" 등을 부르며 A군을 지속적으로 놀렸다. A군은 "아니야, 하지마, "싫다"라는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교사의 괴롭힘은 계속됐다.

이에 법원은 교사에 대해 "A군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놀려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를 했다"며 "학대하려는 명백한 목적이 없다 해도 미필적 고의만으로도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 쫓아내거나 가두는 행위

아이를 집 밖으로 쫓아내거나 좁은 공간에 가두는 행위도 정서학대다. 아이를 겁박함으로써 공포감, 불안감, 모멸감을 주기 때문.

동생과 싸웠다고 아이를 속옷차림으로 문 밖에 나가게 하고, 짐을 싸서 쫓아내는 행위, 배란다에 있는 다용도실에 가두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의 행위가 이에 해당된다.

이와 관련해 우는 아이를 어두운 방에 홀로 가둬놓고 정서적으로 학대한 청주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지난달 24일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 잠을 재우지 않는 행위

밤에 잠을 재우지 않는 행위도 마찬가지. 이를테면 아이에게 과도한 분량의 숙제를 내고 숙제를 마칠 때까지 밤을 자지 못 하게 하는 것이다.

◇ 유흥업소에 데려가는 행위

밤 늦은 시간, 아동 출입이 금지된 곳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행위도 정서학대에 포함된다. 아동 출입이 금지되는 곳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술·노래·춤의 제공 등 유흥접객행위가 이뤄지는 유흥업소, 단란주점 등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성인 중심의 공간에 아이를 데려가는 것은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은 자극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 가족 내 왕따

가족 구성원들이 아이를 따돌림시키는 행위 역시 정서학대가 될 수 있다.

가령 가족이 외식하는데 한 아이만 데려가지 않고, 혼자 집에 내버려둬 아이가 식사를 굶는 일이 자주 있을 때다.

◇ 가정폭력을 목격하도록 하는 행위

아동 앞에서 부부가 싸우는 것 역시 아이의 정서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다. 아이는 부모라는 안전기지를 바탕으로 성장하는데, 부모의 싸움은 아이로 하여금 삶의 근원인 가족, 부모가 붕괴되는 근원적인 두려움을 끄집어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행위는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 이상"이라고 주의를 준다.

아이 앞에서 지속적으로 부부가 욕설을 하며 자주 심하게 다투는 것 외에도 아이가 다른 가정의 싸움을 보도록 놔두는 것도 정서학대가 될 수 있다.

◇ 다른 아동을 학대하도록 강요하는 행위

이밖에도 다른 아이를 학대하도록 강요하는 행위가 정서학대에 포함된다. 예를 들어 반장인 아이에게 숙제를 해 오지 않은 다른 아이을 회초리로 때리라고 명령하는 것 등이다.

무엇보다 보호자는 정서학대를 인지하고, 자신의 양육법을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고완석 굿네이버스 과장은 "무엇보다 성인은 정서학대도 아동학대라고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지금 세대의 부모들은 '나도 어릴 때 부모에게 욕을 듣고 자랐는데 뭐'라는 식으로 정서학대를 합리화해서는 안 된다. 자녀의 올바른 발달을 위해서 부모가 자신의 양육법을 돌아보고 혹시나 무의식중에 정서학대를 한 건 아닌지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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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주 기자(yj.lee@ibabynews.com)